"작품 기다리다 세월 갈까 조급해" <사랑따윈 필요없어> 도지원


17년 베테랑 연기자 도지원에게 올해는 여러모로 의미 깊은 해다. <신데렐라> <사랑따윈 필요없어>로 본격적인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 것. 새로운 전환점에서 다시 한 번 변신을 꿈꾸는 도지원을 만났다.

맑다. 단단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과 연륜을 담은 미소가 선하고 곱다. 실제 도지원에게선 <여인천하>의 표독스런 경빈을 상상할 수 없다.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신하는 도지원은 천상 배우다. 도지원에게 2006년은 변화의 해다. 본격적으로 영화 연기에 나선 것. 경빈 역으로 연기파 배우가 됐지만 경빈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 새로운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도지원은 올해, 드디어 경빈을 떠나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바로 첫 번째 영화 주연작인 공포영화 <신데렐라>와 일본드라마가 원작인 멜로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통해 단아하되 강직한 이미지로 변신을 시도한다.

너무 곱다. 비결이 뭔가?

고맙다.(웃음) 좌우명이 '순수함을 잃지 말자'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할수록 마음가짐이 나태해질 수 있다. 항상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나이를 앞세워 어른 대접 받으려 하지 않는 편이다. 어쩌면 이게 젊음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눈먼 민(문근영)을 돌봐주는 이 선생 역을 맡았다. 단아하고 정갈한 매력이 돋보이더라.

아직 <여인천하>의 경빈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이미지를 없애고 싶어 이 선생 역을 선택했다. 이 선생은 어두운 분위기의 대저택을 관리하는 집사라 자신의 내면을 꾹꾹 누르고 사는 캐릭터다.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일본드라마가 원작이다. 원작은 봤나?

촬영이 끝날 때까지 안 봤다. 원래 원작을 잘 안 본다. <토지>를 찍을 때도 안 봤다. 원작을 보고 연기하게 되면 원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원작과 똑같이 하다보면 내 나름의 캐릭터를 뽑아낼 여지가 없어진다. <사랑따윈 필요없어>도 드라마 속 배우를 따라할까 겁나서 안 봤다. 대본에서 받은 느낌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연기하기 더 편하다. 어차피 감독님도 그 드라마와 똑같이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다.

이 선생은 민에 대해 애증을 느끼는 캐릭터다. 이 선생이 민을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아쉬웠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도 민을 떠나가는 장면은 슬프지 않았나? 그 장면은 눈먼 아이와 그 친구를 바라보는 이 선생, 둘의 애증으로 범벅된 세월이 응축돼 있다. 이 선생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 장면 하나로 설명해야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선생은 민에게 어머니와도 같다. <신데렐라>에서도 딸에 대한 모성을 애절하고 공포스럽게 연기한 바 있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엄마 같지 않았나?(웃음) 나 역시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게 상상이 안 갔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 역을 받아들인다면 연기자로서 또 다른 연기에 눈뜨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역할을 할 때마다 연기자로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여인천하>의 경빈을 연기했기에 <토지>의 억척같은 역을 소화할 수 있었다. 경빈 역이 워낙 세서 그 뒤로 힘든 연기가 닥쳐도 두려움은 없어졌다.

<신데렐라>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신세경, 문근영 등 나이 어린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언니, 동생으로 편하게 지냈다. 서로 간의 경계를 늦추면 나이 차이가 많아도 호흡에는 무리가 없다. 다행히 같이 연기했던 배우들이 잘 따라와 줬다.
올해 <신데렐라> <사랑따윈 필요없어>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 입지를 넓혔다. 2006년은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드라마, 방송만 하다 올해 본격적으로 영화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 과거에는 영화를 찍을 엄두를 못 냈다. <신데렐라>와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찍으며 영화의 매력을 느꼈다. 영화를 찍으면서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 드라마의 경우 캐릭터의 성격을 잡아가는 건 순전히 연기자의 몫이다. 영화는 감독과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한 장면에 대해 연구하며 찍으니 재밌더라. 그런 면에서 올해는 연기에 대한 의욕도 생기고, 연기가 재밌어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연기한 지 17년이 됐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다.

이게 내 길인가 고민하다, 시청률 잘나오면 기분 좋아지고. 여러 희로애락을 느꼈다. 신인 때는 연기도 못하는 것 같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사람들 간의 교류가 힘들었다. 그때는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말하는 것 자체가 버겁더라. <일출봉>이란 사극을 찍으면서 연기자로서 큰 변화를 겪었다. 그 시기를 지나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그 전에는 배우로서 나만의 이미지를 가지려 노력했다면 어느 순간 나 자신부터 깨부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출봉> 다음 작품이 <폭풍의 계절>인데 귀여운 푼수 역이었다. 과연 내가 발랄한 역을 할 수 있을까 주저했는데 해보니까 생각보다 수월하더라. 여러 가지를 소화하는 배우가 되느냐, 나만의 이미지를 구축하느냐에 대한 갈등이 답을 찾은 순간이었다. 코믹이든 액션이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여인천하>의 경빈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0년대만 해도 30대 여배우가 거의 없었다. 최근에 많은 배우들이 자기 영역을 구축하며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할리우드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외국 배우들의 경우 30~40대 배우가 더 이름을 알리고 있지 않나. 앞으로 30대 여배우들이 입지를 잘 굳혀간다면 나름의 개성과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20대 연기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30대 여배우가 많아졌다고 해도 배우로서 위기의식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 같다.

조급함이 없는 배우는 없다고 본다. 경쟁자라 말하기 그렇지만 수많은 배우가 쏟아지는 시대다. 시나리오 기다리다 세월 갈까 조급해진다. 요즘 들어 20대 연기를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마음을 아니까. 그 느낌을 더 잘 표현하지 않을까. 점점 나이 들어가는 선배들을 보면 연기가 더 깊이 있어진다. 그런데도 괜찮은 연기를 할 나이가 될 즈음이면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없다. 때론 좀 더 일찍 영화를 시작했을 걸 후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찍 시작했다 해도 지금 느끼는 감정은 몰랐을 것 같다.

연기하면서 가장 큰 버팀목이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다. 연기하는 동안 감독과 동료 배우, 스탭들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때가 제일 힘들다. 감독님이 내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단 느낌이 들면 굉장히 고맙다.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만 들면 시나리오에 대한 의문점들을 편안하게 물어보게 되는 등 많은 힘을 얻게 된다.

공포영화를 싫어하면서 <신데렐라>를 찍었다. 사극, 공포, 멜로 등을 했는데 어떤 장르가 가장 맞나?

모르겠다. 연기하면서 즐거운 건 시트콤이다. 연기하면서도 즐겁고, 사는 게 행복해진다. 특히 주위 사람들과 교류도 좋아지고, 무서웠던 선생님과도 편해진다. 사람이 분위기 따라 변한다는 게 맞다. 왈가닥스러운 연기를 좋아하지만 관객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른가보더라. 아직 딱히 나랑 어떤 게 맞는지 모르겠다.

모노드라마 같은 연극에 출연하면 잘할 것 같다.

아직 엄두를 못 낸다.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다. 발성이 크고 제스처가 큰 연극을 하다보면 연기자로서 많은 부분을 얻게 될 것 같다.

표독스러운 경빈을 보고 있으면, 저 연기하다 배우 잡겠다 싶다.

드라마 끝날 때 이게 죽는 거란 생각이 들더라.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몸이 망가질 지경이었다.

발레 전공이다. 발레에서 연기로 직업을 바꿀 때 큰 결단력이 필요했을 것 같다.

발레를 할 때는 발레가 내 인생이라 생각했다. 이게 아니면 아무것도 없다고. 지금은 연기자가 나한테 천직이다. 이러다 문득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연기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즉흥적인 연기를 좋아하나?

난 대본에 있는 대로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즉흥적인 연기는 상상도 못한다.

다음 작품 계획은?

<펀치 레이디>라는 작품을 내년 초부터 촬영한다. 좀 더 밝은 캐릭터라 지금까지 이미지와 다를 것 같다. 늘 한 군데만 정착하지 않는 새로운 느낌의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 이휘영     박혜영 기자
카테고리 없음 l 2007. 11. 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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